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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71년 만에 재심, 재판부 “역사적 소임 다하겠다.”

여순사건 재심 첫 심리가 29일 유족과 언론인을 비롯한 많은 시민이 법정을 가득 메운 가운데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재판부(재판장 김정아)는 “이번 재심사건의 중요성을 잘 안다”면서 “최선을 다해 공판을 진행해 역사적 소임을 다하겠다”며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현재 호남지구 계엄사령관의 사형 집행 명령문만 남아 있어 공소 사실조차 알 수 없는 상태다”면서, “하지만 앞으로 관련 자료를 수집해 실체적 진실 규명으로 피해자들이 명예 회복을 할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갖고 공소 유지에 힘쓰겠다”고 하였다.

여순사건 당시 드러난 ‘군법회의’만 17회

29일 오후 1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정문 앞에서는 봄비가 퍼붓는 중에도 여순사건 재심 재판에 앞서 ‘여순 10·19 사건 재심대책위’ 주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기자회견에서 주철희 박사(역사학자)는 “1948년 11월 호남지구 계엄사령부 명령 제3호에 의해 순천지역에서 102명의 사람이 집단 학살됐다. 이 중에 세 분인 고 장봉환, 고 신태수, 고 이기신씨 유족이 재심을 청구해 오늘 재심 재판이 열리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당시 여순항쟁으로 여수에서 세 차례, 순천에서 네 차례, 광주에서 세 차례 등 총 10차례 군법회의가 있었다.

현재 밝혀진 국방부 기록상 17회 군법회의, 521명 사망 확인

이 군법회의로 521명이 사형됐고 709명이 형무소에 수감됐다. 이 숫자는 확인된 내용이고 최소 인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현재 국방부의 기록을 보면 명령 제17호까지 있다. 따라서 최소한 17차례 군법회의가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 군법회의에 대해 이제 사법부가 준엄한 심판을 해야 할 때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주 박사는 “지난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여순사건) 군법회의에 회부된 분들은 모두 진실 규명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이번 재판을 통해 군법 회의에 회부된 모든 분들이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사법부에서 명예회복을 통해 배·보상을 받을 길이 열렸다는 게 이번 재심의 가장 큰 의미다”라고 밝혔다.

이어 “군법회의에 회부된 분들은 이제 여순사건 특별법 없이도 국가에서 배·보상을 받을 길이 열렸다. 사법부가 국가폭력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리면 행정부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재심의 의미와 기대를 밝혔다.

재판부 “역사적 소임 다하겠다”

오후 2시 순천지원 316호 법정에서는 제1형사부 김정아 부장판사 주재로 여순사건이 발생한 지 71년 만에 재심 첫 공판이 열렸다. 김 판사는 재판에 앞서 이번 재심 사건에 대한 재판부 입장과 재판 절차를 설명했다.

그는 준비한 입장문에서 “지난 3월 21일, 대법원의 재심 결정이 나온 뒤부터 재판부는 이 재심 사건에 대해 면밀히 살펴서 재판을 준비하였다”면서, “어머니 등에 업혀 아버지를 면회하던 아이는 벌써 노인이 되었다”,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국민이 풀고 가야 할 아픈 과거이고 현재의 고통임을 안다”고 하였다.

이어 “다만 최소한의 절차도 없이 사형이 선고되고 판결서도 없는 상황이란 점에서 재심이 가능한지도 의문스럽다”며, “유족에 대한 보상 · 사과 · 명예회복 등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책무 등을 놓고 법원의 고민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김 판사는 “최선을 다해 공판을 진행해 역사적 소임을 다하겠다”며 재심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 여순 10.19 재심대책위 기자회견 / 순천지원 정문 앞에서 열린 여순 10.19 재심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정병진

검찰 “최대한 관련 자료 수집해 사건 실체 규명 노력”

검찰은 “대법원의 재심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전제한 뒤, “여순사건 당시 사형 집행은 호남 계엄지구 사령관의 명령 제3호로 이루어졌으나, 현재 그 명령문만 남아 있을 뿐 공소장이나 재판 기록 등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이번 사건의 실체를 알기 힘든 상황”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제주 4·3사건처럼 공소 기각을 하기보다는 최대한 관련 자료를 수집해 공소 유지를 함으로써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사건의 실체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였다.

그는 또 “얼마 전 국방부, 국가기록원과 TF를 구성해 첫 회의를 한 바 있다”고 밝히고, 6.25 전쟁 과정에서 관련 자료들이 소실됐을 가능성이 있지만, 자료를 최대한 수집해 역사의 퍼즐을 맞춰보겠다”고 말했다.

유족 변호인 김진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재심 청구인 중 두 분이 소송이 장기화되면서 이미 사망하였지만, 청구인의 자격은 그대로 유지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어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아도 피고들의 죄명인 당시 내란죄의 실체를 규명하면 명예회복을 위한 판결도 나올 수 있다”고 하였다.

즉 당시 호남 계엄지구 사령관의 명령으로 희생당한 세 분(고 장봉환, 고 신태수, 고 이기신)에게 적용한 ‘내란 및 국헌 문란죄’ 적용 자체가 위법해 원천 무효임을 밝힘으로써 명예회복을 이룰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족 “재판 신속히 진행해 ‘빨갱이’ 굴레 벗겨 달라”

재판부는 재심 청구인 중 한 분으로 재판에 참석한 장경자(73)씨에게도 심경을 밝힐 시간을 주었다. 장 씨는 “‘내란죄’라는 무시무시한 죄로 아버지를 잃었다. 그 뒤 연좌제로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며, “이제 오랜 세월이 흘러 유족들도 고령이라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재판을 신속히 진행해 ‘빨갱이’의 굴레를 벗겨 달라”고 요구하였다. 이후 재판부는 검찰이 자료 수집을 할 여유를 주고자 오는 6월 24일 2차 준비 기일을 잡았다.

한편 여순항쟁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 제14연대가 제주 4·3 진압을 위한 출동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를 일으켜 군경과 민간인 1만 5천여 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시행에 따라 출범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는 2006년부터 3년간 여순사건 관련 총 1,102건의 신청에 대한 직권조사를 벌여 군인과 경찰에 의한 890명의 무고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음을 밝혀냈다. 진화위는 2010년 그 결과를 발표하며 “국가가 희생자와 유족에게 공식 사과하라”고 권고하였다.

이용주 의원(민주평화당) 등 12명의 의원이 2018년 10월 1일 발의한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은 현재 국회 국방위원회의 심사 단계에 있다.

정병진 기자 naz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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