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가 개표상황표 ‘미분류표’라는 용어를 바꿨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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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3 지방선거에 사용될 개표상황표 서식. 종전 ‘미분류된 투표지’라 적혀 있던 란에 ‘재확인대상 투표지’라 쓰여 있다. ⓒ 정병진

6.13 지방선거 개표상황표에는 ‘미분류표’란 용어가 사라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개표상황표 작성 예시’에서 종전 ‘미분류표’ 대신 ‘재확인대상 투표지 확인결과’라고 바꿨다. ‘미분류표’란 개념을 없애고 ‘재확인대상 투표지’라 함으로써 오해의 소지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미분류표’를 ‘재확인대상 투표지’라 하면 현행 공직선거법 관련 규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펴낸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개표관리매뉴얼 ‘개표상황표 작성 예시’를 살펴보면 ‘심사 · 집계부’란에 ‘분류된 투표지 확인결과(a)’와 ‘재확인대상 투표지 확인결과(b)’의 득표수를 후보자별로 적는 칸이 있다.

지난해 5월 9일 치른 19대 대선 때까지만 해도 ‘분류된 투표지 확인결과(a)’와 ‘미분류된 투표지 확인결과(b)’였던 문구가 바뀐 거다.

여기서 말하는 ‘분류된 투표지’는 개표 때 사용하는 ‘투표지분류기’에 의해 후보자별로 분류된 투표지이고, ‘미분류된 투표지’는 기기가 인식에 실패해 분류를 못하고 미분류 포켓으로 보낸 표(ex. 애매한 표, 무효표, 정상적 투표지이지만 기기 오작동으로 인식에 실패한 표 등)를 일컫는다.

투표지분류기가 후보자별로 분류한 표나 분류에 실패해 토해낸 미분류표 모두 심사 · 집계부에서 수작업으로 유효와 무효를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게 돼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개표사무를 보조하기 위하여 투표지를 유·무효별 또는 후보자별로 구분하거나 계산에 필요한 기계장치 또는 전산조직을 이용할 수 있다”(법 178조 2항)고 규정한다.

선관위가 개표에 사용하는 ‘투표지분류기’나 ‘투표지심사계수기’ 같은 기기를 개표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 가능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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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지분류기 / 20대 총선 여수개표소의 투표지분류기(전자개표기) ⓒ 정병진

‘투표지분류기’는 명칭 그대로 “투표지를 유·무효별 또는 후보자별로 구분후보자별로 구분해” 개표를 신속히 진행하도록 돕는 ‘보조적 기기’다.

투표지분류기의 투표지 구분(분류) 작업은 사람이 육안으로 해야 하는 ‘득표수의 검열 작업,’ 즉 투표지의 유·무효별 또는 후보자별로 확인해 득표수가 정확한지 여부를 가리는 작업과는 다르다.

때문에 ‘미분류표‘를 ‘재확인 대상 투표지’라 바꾸는 건 개념상 차이가 있어 선거법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확인 대상 투표지’라고 하면 투표지분류기로 확인을 한 투표지라는 뜻이 들어있다. 투표지분류기 단계에서 확인했지만 이후 다시 확인해야 할 투표지란 의미가 된다.

이에 대해 이완규 씨(이프레스 편집인)는 11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투표지분류기를 도입한 16대 대선 때, 이 기기를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 여부를 놓고 선거무효소송(대법원 2003수26)이 제기된 바 있다”며, 당시 대법원 판결문의 다음과 같은 관련 판결문을 인용하여 문제점을 지적했다.

(판결문)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이 사건 개표기는 선거법 178조 4항과 그 위임에 의한 공직선거관리규칙 제99조 제3항에 규정되어 있는 투표지를 유·무효표와 후보자별로 구분하고 계산하는데 필요한 기계장치나 전산조직으로서 심사·집계부의 육안에 의한 확인 심사를 보조하기 위하여 기표된 투표지를 이미지로 인식하여 후보자별로 분류하거나 미분류 투표지로 분류하고 미분류투표지를 제외한 후보자별 투표지를 집계하는 기계장치에 불과하므로…”

2002년 당시 공직선거관리규칙 제99조 3항에 있던 조항을 2014년 1월에 폐지하고 공직선거법(제178조 2항)으로 바꿔 신설됐다. 이로써 개표에 투표지분류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는 생겼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 기기는 “심사·집계부의 육안에 의한 확인 심사를 보조하기 위하여” “(투표지를) 후보자별로 분류하거나 미분류 투표지로 분류”하고 “집계하는 기계장치”이지, 투표지분류기가 투표지를 ‘확인 심사’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미분류표’를 ‘재확인 대상 투표지’라 하면 투표지분류기로 이미 ‘확인’을 거쳤다는 사실을 전제하기에 이는 법령과 맞지 않다”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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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멘붕의 시대> 한 장면. 18대 대선 당시 경기 구리시 개표 결과에서 분류표로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격차가 -0.1%인데 미분류표 통계에서는 17.8% 차이로 박 후보가 앞선 결과를 보인다. ⓒ 정병진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후보자별로 분류된 투표지를 심사집계부에서 육안으로 확인하므로 용어가 변경되었다고 하여 실무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하였다.

또 “미분류라는 용어는 분류기 관점에서 보면 분류기로 다시 분류하라는 것으로 오해되는 반면 재확인대상투표지는 분류기가 후보자별로 분류를 안했으니 심사집계부에서 다시 후보자별 그리고 무효표인지를 확인해서 분류하라는 의미로 오히려 국민적 이해도를 높이는 측면을 고려한 것”이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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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대 대선 개표부정 의혹을 다룬 영화 <더 플랜>의 한 장면ⓒ 정병진

한편 19대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지난해 4월, 18대 대선 개표부정 의혹을 다룬 다큐 영화 <멘붕의 시대와 <더 플랜>이 차례로 개봉하여 파장을 낳은 바 있다. 이들 영화는 1, 2위 후보 간 ‘분류표’의 상대 비율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 ‘미분류표’ 결과를 중심으로 18대 대선 개표부정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였다.

중앙선관위는 올해 1월 19일 관보에 ‘미분류표’를 ‘‘재확인대상 투표지’라고 개표상황표 서식 변경하는 사실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