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투표지분류기 신형 도입 4년 만에 또 제작

기존 기기 내구연한 6년 남았는데 또 제작? 선관위….” 물량이 많이 늘어 추가 제작”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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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지분류기 구성 / 투표지분류기 제작 제안 요청서에 나오는 구성도
ⓒ 정병진

오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앙선관위가 공직선거 개표에 사용하는 투표지분류기(전자개표기)를 납품 업체를 바꿔 새로 제작하였다.

내구연한이 10년임에도 불과 4년 쓰고 100억여 원을 들여 기기 1177대를 더 제작하는 터라 국고 낭비가 아닌지 그 배경에 의문을 낳고 있다.

선관위는 2002년 6월 13일 실시한 제3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 개표에 투표지분류기를 처음 도입하였다. 당시 도입한 투표지분류기(973대)는 2004년(405대)과 2008년(449대) 일부 추가 제작을 하였지만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 때까지 10년 동안 사용하였다.

하지만 내구연한 10년을 다 하였고 기기 성능 저하, 부품마모로 정확성, 신속성, 편의성이 떨어지자 선관위는 2013년에 118억여 원을 들여 신형 투표지분류기(1378대)를 제작하였다.

기존 투표지분류기는 제어용PC, 분류기, 프린터기로 나뉜 제품이었으나 신형은 일체형으로 바뀌었고 무게가 가벼워졌으며, 제어용PC도 노트북 형태의 스크린 터치형으로 장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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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총선 당시 투표지분류기 / 여수 20대 총선 개표 당시 한 투표지분류기
ⓒ 정병진

이 신형 투표지분류기는 2014년 6.4 전국 동시지방선거 때부터 2017년 5.9 제19대 대통령선거까지 4년 동안 개표에 쓰였다.

처음 전면 도입한 2014년 6.4 지방선거 때 평균 미분류율은 1.65%였다. 18대 대선 당시 전국 평균 미분류율이 4.16%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확도가 크게 향상됐다.

2002년 첫 도입한 기기의 1분당 처리 속도는 220매(1시간당 1만3200매)였지만, 2013년 제작한 기기는 1분당 340매(1시간당 2만400매)를 처리해 속도도 빨라졌다. 그러나 2016년 치른 20대 총선 당시 투표지분류기의 전국 평균 미분류율은 6.52%로 대폭 높아졌다.

미분류표는 투표지분류기가 인식에 실패해 후보자별로 분류해 내지 못하고 포켓에 토해내는 표를 말한다. 기표를 잘못한 무효표나 애매한 표라면 미분류표로 보내야 맞지만 멀쩡한 유효표들조차 미분류표로 처리한다면 기기의 정확도가 저하됐기 때문이다.

중앙선관위는 “무효표를 제외한 평균 미분류율을 3% 이내여야 한다”는 기준을 갖고 있다.
한데 신형기기를 사용한 지 불과 2년 만에 기준치를 크게 웃도는 미분류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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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진배경 / 투표지분류기 제작 제안 요청서에 나오는 추진배경
ⓒ 정병진

2014년식 투표지분류기의 내구연한은 아직 6년이나 남은 상태다. 그런데도 중앙선관위가 납품업체를 바꿔 또다시 기기 제작을 한 배경 중 하나는 “유효투표지의 높은 미분류율”이다.

그 밖에 “장애 시 처리과정 복잡”, “특수 지질 투표용지만 분류 가능해 예산 낭비 및 업무량 과중”, “투표지 오적재 개연성 원천 예방, 차단” 등의 이유를 든다.

투표지분류기의 성능이 저하됐다면 부품교체, 점검 보수와 수리, 프로그램 업그레이드로 기능을 향상할 수도 있다.

일례로 중앙선관위는 2008년 제작한 USB 방식의 투표지분류기 484대의 경우, 2014년 3월, 전국에서 회수하여 이 같은 방식으로 점검, 보수하여 프로그램을 개선한 바 있다. 그런데 왜 100억여 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투표지분류기를 또 제작하는 걸까?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투표지분류기 신규제작 사유에 대해 “기존 기기를 전부 교체하려는 게 아니라 6.13 지방선거 때 (처리해야 할 투표지) 물량이 많이 늘어 추가 제작한 거다. 이번 지방선거 때 기존 기기를 포함해 약 2550대를 사용할 예정이다. 기존 기기를 폐기하지 않기에 예산 낭비는 아니다”라고 해명하였다.

신규 기기 도입 추진배경에 “유효투표지의 높은 미분류율”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지적하자, “그건 기존 장비가 좋지 않아서 혹은 기기가 부정확해서 그런 조건을 단 게 아니라, 기기를 제작할 때 공통으로 들어가는 기술조건이다”고 해명하였다.

하지만 중앙선관위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고 낭비’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진 않는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처리해야 할 물량이 많이 늘어 추가 제작을 하였다”는 해명을 내놓았으나, 5월 4일 현재 6.13 지방선거의 선거인 명부조차 작성되지 않은 상태다.

선거인명부 작성 기간은 5월 22일부터 5일간이며, 이 명부가 나와야 실제 선거인의 증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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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인수 변동추이 / 중앙선관위 선거통계시스템 선거인수 변동추이
ⓒ 정병진

더욱이 선거인이 2014년 6.4 지방선거에 비해 늘어난다고 해도 당시보다 갑절로 늘어나진 않을 전망이다.

중앙선관위 선거통계시스템이 밝힌 선거인수 변동추이를 살펴보면 2014년 제6회 동시지방선거(2014.6.4) 당시 선거인수는 4129만6228명이고, 19대 대통령 선거 인구수(2017. 5. 9)는 4247만9710명이다.

2014년에 비해 2017년은 선거인수는 118만여 명 늘었을 뿐이다. 기존 투표지분류기의 갑절에 해당하는 1177대나 새로 제작해야 할 만큼 선거인수가 증가 많이 증가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개표에 사용하던 기존 투표지분류기 1300여 대에 더하여 1177대 신형기기를 투입하면 개표 속도는 더 단축될지 모르나 그만큼 인력과 선거 비용은 많이 늘어난다. 투표지분류기 신규 제작이 불필요한 예산 낭비 사업이 아닌지 의문이 가시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