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사가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고 있으니…이제는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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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 투개표를 지휘·감독하는 선거관리위원장> 현직 판사가 한다. 부정선거 소송을 하면 선거관리위원장이 피고가 된다.

지난 1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권순일 대법관을 중앙선관위 위원으로 지명하였다. 김용덕 현 중앙선관위 위원장이(대법관)이 사퇴 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그를 대신할 새 대법관을 지명한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여러 언론매체는 권순일 대법관이 제20대 중앙선관위 위원장에 내정됐다고 보도하였다. 호선(互選: 특정한 범위 안의 사람들끼리 투표하여 그 구성원 중에서 어떤 사람을 뽑는 일) 절차가 남아 있지만, 대법관이 중앙선관위 위원장을 맡는 게 오랜 ‘관행’이기 때문이다.

역대 중앙선관위 위원장 중에서 대법관 출신이 아닌 자가 중앙선관위 위원장을 맡은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변호사인 이회창 씨가 제8대 위원장(1988.7.27.~1989. 10. 24)을 수행하였으나 그도 대법관 출신이었다. 현재 중앙선관위 위원 중에는 서울고등법원장 출신 조병현, 사법연수원장 출신 조용구 씨가 있지만, 대법관을 지내진 않았으므로 이변이 없다면 최근 중앙선관위 위원으로 지명받은 권순일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을 게 확실시된다.

중앙선관위 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가 선출하는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 등 모두 9명이다. 현행 선거관리위원회법은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장은 당해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법 제5조의 2)고 규정한다.

법령을 준수하려면 아홉 명의 위원이 내부 투표를 하여 위원장을 뽑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호선’ 절차는 대법관이 중앙선관위 위원장을 맡는다는 ‘관행’에 따르느라 사실상 사문화된 지 오래다.

이 같은 사정은 구·시·군 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장을 세울 때도 그리 다르지 않다. 구시군선관위 위원은 “그 구역 안에 거주하는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고 정당원이 아닌 자 중에서 국회에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이 추천한 사람과 법관·교육자 또는 학식과 덕망이 있는 자 중에서 6인을 시·도선거관리위원회가 위촉”(법 제4조 3)하게 돼 있다. 한데 전국의 구·시·군 선관위 위원장 중에서 현직 법관이 아닌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각 구·시·군 선관위가 ‘관행’을 내세워 현직 법관을 위원장으로 위촉하기 때문이다.

대법관이 중앙선관위 위원장을, 현직 법관이 구·시·군 선관위 위원장을 ‘관행’에 따라 맡는다고 해도 공정한 선거관리를 한다면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대와 신뢰가 어긋났을 때 주권자인 시민들이 이를 제어할 적당한 방법이 없다는데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가령 18대 대선에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개입하였고 개표 부정이개표부정이 있었다고 본 시민 6천여 명이 2013년 1월 4일 대법원에 대선무효소송(2013수18)을 제기하였다. 한데 대법원은 180일 이내에 처리하게 돼 있는 뚜렷한 이유 없이 이 재판을 열지 않다가 지난 4월 27일에야 “대통령이 탄핵당해 법률상 구할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하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한 가지 대법원이 그들 가족의 심판을 꺼렸으리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현행 선거법은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 효력에 이의가 있는 선거인 · 정당 · 후보자는 “선거일부터 30일 이내에 당해 선거구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피고로 하여 대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다”(법 제222조 1항)고 규정한다.

따라서 18대 대선무효소송의 피고는 당시 중앙선관위 위원장이자 대법관인 김능환 씨였다. 즉 현직 대법관이 ‘피고’인 대선무효소송 재판을 대법원의 동료 대법관들이 맡아 재판을 해야 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다. 대법원이 아무리 대한민국 최고의 권위를 지닌 사법기관이라 하더라도 동료를 상대로 어떻게 유무죄를 엄정히 심판할 수 있을까.

지방법원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시민들이 지역 선관위의 위법적인 선거관리 사실을 알고 이를 검찰에 고발해 기소가 이루어진다 해도 재판을 맡은 판사가 해당 선관위 위원장의 동료인데 과연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실제로 지금까지 선거관리를 잘못하였다는 이유로 실형 판결을 받은 선관위 직원은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역대 모든 선관위 직원이 ‘공정하고 정확한’ 선거관리를 했기 때문이면 다행이고 칭찬할 일이지만 그게 아니라 사법부가 방패막이 노릇을 해준 결과라면 이는 바로잡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농단 사태로 들불처럼 번진 ‘촛불혁명’을 거쳐 탄생하였다. 그러기에 지난날 ‘적폐청산’을 우선 과제로 꼽고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의 본질은 박근혜 씨를 비롯한 그 관련자들이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지 않고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데 있다. 법률이 선관위 위원장을 위원 중에서 ‘호선’하여 세우도록 규정함에도 ‘관행’을 이유로 이를 지키지 않는 일 또한 개혁해야 할 ‘적폐’에 해당한다.

선관위는 3.15 부정선거와 4·19혁명을 거쳐 헌법기관으로 태어났다. 공정한 선거관리로 (관권) 부정선거의 재발을 막자는 취지다. 한데 사법부와 선관위가 ‘관행’을 들어 같은 집안 식구처럼 유착된다면 이는 공명선거로 가는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위험이 크다.

앞으로는 반드시 법령을 준수해 선관위 위원장을 ‘호선’해야 한다. 또 중앙선관위 위원장의 경우는 설령 대법관이 맡는다 해도 대법관직을 겸직하지 못하게 하여 공정성 시비가 일지 않게 하기를 바란다.

 

정병진 기자 / naz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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